절대 미안하지 않은 인간들의 나라에 산다는 것은…(2)
- Hazelle Di Crollalanza
- 3월 3일
- 5분 분량
“그거 내 담당 아니지롱.”
미친건가… 이십 분이나 상황 설명했는데?? 왜 미리 말하지 않은거임?
“그럼 담당자님은 어디에 가면 용안을 뵙나요?”
“담당자 오늘 안 나옴. 목요일에 다시 오셈”
절대 미안하다는 말 없음. 그렇겠지… 남산배는 담당자 아니니께… 그런데 문제는… 또 하나 더 있었음.
딸이 곱게 받아온 벌금티켓이 오늘까지 내면 70유로, 하루 넘기면 130유로로 껑충 뛴다는 거였음.
집에 와서 두 부부가 이걸로 회의를 한 30분.
어쩔까. 일단 쌀 때 낼까? 아니 우리가 왜 내야해? 근데 안 내면 거의 두배로 오르는데? 그래도 왜 내야 해? 잘못한게 없는데? 프렌치를 몰라? 얘네가 그런게 통하는 인간들이야?
한참 회의 끝에 항의 하나는 태어날 때 부터 잘하는 걸로 소문난 투덜이 스머프 고서방이 장황하게 벌금 거부서를 망할 버스 회사에 보냄. 누가 보면 논문인줄… 저 긴 글을 누군가가 다 읽기는 할까 싶게 A4로 한 세장짜리 보냄. 인간이 학창시절에 논술 점수 제대로 못 받은 한을 주로 항의서로 푸는 경향이 있음.
항의서를 한풀이 수준으로 썼지만 그도 나도 알고 있음.
이 항의서가 받아들여질 확률 또한 희박하다는 것을…
그리하여 우리는 열일을 제치고(사실 열일은 없지만) 목요일 담당자를 만나러 다시 출동
이 시시하고 짜증나는 사건의 클라이맥스 :
목요일 오후에 그 귀하디 귀한 담당자를 만나러 감.
화요일 오후에 우리가 티켓에 대해 호소했을 때 배불뚝이가 그랬음.
‘그건 목요일에 나오는 담당자가 결정할 일이야’
버스카드 정정 이야기를 한 세 번 했을 때도 그랬음. ‘
그것도 담당자가…’
그래서 우리는 꽤나 연륜 있고 권위 있는 버스 회사의 중역을 예상하며 사무실을 들어섰는데…
그 높으신 담당자는 내가 조금만 일찍 결혼했으면 얻었을 딸 뻘의 젊은 아가씨였고 혼자 좁은 사무실에 오도카니 도도하게 앉아 있었는데 타조털 같은 인조 속눈썹을 화려하게 붙인 눈 주위를 고딕 화장으로 짙게 강조했으며 방금 간을 꺼내먹은 듯 생생 시뻘건 입술, 그리고 진짜 거짓말 안하고 한 3센티는 됨직한 길디 긴 인조 손톱을 장착한 독보적인 이 버스회사의 패셔니스타셨음. 그녀는 우리의 방문이 처음부터 매우 탐탁치 않은지 한쪽 눈썹을 다른 쪽 보다 두 계단 정도 올리는 개인기를 선보이셨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사정이 급한 우리는 우리의 심각한 사안 두 가지를 급히 브리핑.
솔직히 매우 인텔리전트해 보이는 인상은 아니었음에도 반전매력! 그 복잡한 상황을 한 방에 다 알아들음. 합리적인 의심 발동. 이런 인간이 우리 뿐이 아니구만?
그녀는 매우 귀찮다는 듯 땅꺼지는 한숨을 전혀 숨길 생각 없이 우리 앞에서 마구 내뱉았는데 그 작태가 매우 거슬렸으나 벌금이라는 큰 힘 앞에서 나는 마구 작아짐. 그녀는 긴 손톱을 시종일관 우리 눈 앞에 마술봉처럼 휘두르면서 이번 한 번만 봐줄테니 다음엔 짤 없다는 말을 힘주어 하더니 크게 선심 쓰듯 벌금을 사해줬음. 갑자기 그녀가 상또노레 한복판을 휘젓는 파리지엔 보다 더 시크해 보임. 그리고 버스 카드는 어찌되냐고 송구하게 또 물었더니 다시 한 번 굴착기 보다 강력한 땅꺼지는 한숨 시전 후 그건 내일 다른 지점으로 오라고 함.
‘왜???’ 거기에 도장이 있다나? 무슨 그건 또 전설의 도장이야? 그 도장 없으면 카드를 못 발급함? 내 머릿속엔 세상 신기한 일곱살의 호기심 천국이 열리지만 나는 어른임. 궁금한거 다 물으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음. 그저 알겠노라… 그러면 내일 다시 그 지점으로 가겠노라… 알고보니 그 여인은 어찌나 막강한 권력을 가졌는지 이 지점, 저 지점 메뚜기로 근무하는 능력자셨음. 그리고 잘못 발급된 내 딸의 카드도 꼭 가지고 오라 함. 자기가 직접 그 카드를 분쇄해야 새 카드를 줄 수 있다는 천기누설도 알려주심. 그녀가 하사한 신청서는 길기도 정말 길고 이것 저것 적을 것도 천지임. 집에 와서 하나 하나 빼곡하게 적었는데 하나 걸리는 부분이 있음. 바로 ‘시청 도장란’임. 그게 뭐냐고? 학생 할인 카드 주시는 것도 감사한 마당에 시청 도장을 찍으면 더 감면 됨. 무려 70유로. 당연히 더 감면 받고 싶겠지? 그런데 님들… 이런거 들어보셨음? 시청이 문을 무기한 닫는거? 왜냐고? 시청 직원 딱 하나인데 그 직원이 아파서… 푸하하하. 뭘 상상하던 그 이상을 해내는 나라임. 프랑스.
그래서 우리는 매우 쿨하게 시청 감면 혜택을 넘기기로 함. 무조건 카드를 빨리 받는게 급선무니께. 다음날 시청 감면 도장 따위 없는 세상 쿨한 신청서 들고 다시 그 여왕을 만나러 갔더니… 헐… 시청 감면 도장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라네?? 그녀가 오랬던 다른 지점은 우리집에서 차로 한시간 반 걸리는데? 시청은 문 닫았는데? 어떻게 도장 받아? 얼음여왕은 가차 없이 다시 매직봉.. 아니 매직 손톱을 휘두르며 말씀하셨음.
“건 니사정이고요. 방침이 그러함. 가서 도장 받아 다시 오삼!”
아… 여기까지 쓰는데 혈압이 지금 한 180되는거 같고 심장 두근거려서 잠시 쉬다 오겠음.
“시청이 문을 안 열고요. 우리가 쿨하게 70유로 감면 포기하겠다잖아요!! 아니 왜 안 되냐고!!”
에라이… 어차피 벌금은 탕감했고 나도 이판사판이야. 니만 성질있고 니만 눈썹있어? 너처럼 한쪽만 올리는 재주 나는 없지만 나는 깊디 깊은 내천자를 그리는 재주가 있으며 또한 너보다 작은 눈을 더 매섭게 떠서 레이저 쏘는 그런 재주가 있다 이거야! 역시 여왕은 나 같은 아줌마 많이 상대했음. 분명함. 내 눈 따위 보지도 않고 말함.
“선택사항 아니라고요! 가서 받아서 다시 오셈.”
일단 후퇴.
어차피 변소 마려운건 바깥에 줄 선 인간이지 변소 안에 들어가 있는 인간 아님.
차 안에서 다시 회의.
어쩌지?
아! 천만다행. 내 남편 누구? 바로 고서방임. 그는 세상 무서울게 없고 심지어 시장 개인 핸드폰 번호를 보유하고 있는 능력자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름. 그는 망설임 없이 시장 전화번호를 검색해 통화를 시도했음. 순간 처음으로 멋있다고 생각할 뻔…(이건 비밀인데 나는 이 인간을 연애 초기에도 멋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 시장은 당연히 전화를 받지 않고 그는 그러거나 말거나 말없이 전화를 끊는 무매너인이 아닌 이태리 공작가의 장손임. 그래서 장황하게 음성 메세지를 남김. 물론 말 끝나기 전에 30초 제한 시간이 다하여 그는 여러번 다시 걸어 또 남기고 또 남기고… 전무후무한 음성 메세지 시즌제를 시전했음. 참으로 신기했음. 저렇게 혼자 말을 잘 한다고? 그는 역시나 이태리 혈통 답게 엄청난 조미료를 쳐서 이 사태를 다 장황하게 설명했는데 벌금 쪽지를 받아 고딩이 울었다는 대목에서는 살짝 꼬집었음. 너무 뻥 아냐? 결론은 그러므로 니가 직접 이 도장 좀 찍어주기 바란다로 귀결. 일단 시장이 전화를 안 받고… 도장을 언제까지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는 상황에서 잠시 패닉에 빠졌다가 이번엔 내가 싸가지 여왕에게 전화를 검.(참고로 그녀의 오피스와 파킹랏은 걸어서 십분임… 말했잖아.. 허허벌판이라고)
“야! 언제까지 도장 받아 내야 돼?”
이판사판 나도 말 곱게 안 나옴
“모르겠고 나는 내일부터 2주간 휴가지롱! (메롱!)”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버스카드 영화 …. 인정?
“헉!! 뭐?? 그런...그럼 어떡해?”
“오늘 받아서 4시 전에 가져오던가, 아님 우편으로 본사에 보내”
“나 본사 주소 몰라!”
“받아 적어. @#$@#$@$@$#$”
“뭐라고??”
“아후…(굴착기 한숨) @#$@#$@$#@$@#$#@$@$@$3”
왜 말할때마다 주소가 길어지지? 그리고 얘는 프랑스말에 아랍어 억양 왜이리 강해?(내가 프랑스어 딸려서 그런거라고? 뭐 그럴수도 있겠지만 중동이 프랑스어 하는건 거의 제주도 방언 수준일때도 많음)
“… 좀 표준어로 말해봐!”
“흠… 내가 준 신청서 그 윗부분에 진짜 작은 글씨로 주소 있어.”
진작 왜 말 안한거야? 어차피 시간은 2시임. 시장은 전화도 안 받고 있고 미친듯 받아서 돌아와도 4시 전은 불가능임. 누가 우리한테 헬기를 주지 않는 이상…(아 줘도 운전을 못하네?)
오… 방금 마녀랑 한판 했는데 마침 남편의 전화가 울림. 시장인듯 함!
“…. 네… 네… 죄송합니다”
다행히도 내 남편은 아주 드물게 미안할 줄 아는 프렌치임. 그래서 사고를 그리 쳐대도 내가 같이 사는지도… 아주 짧은 통화가 끝나고 그의 얼굴은 매우 익숙한 표정으로 일그러져 있음. 뭐냐 또… 왜 시장한테 미안한거냐…
“안경점 주인인데…”
“뭐? 안경점 주인이 왜 전화해? 그리고 왜 미안해?”
“음…. 그 안경점이 베르농(우리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큰 도시) 시청 옆에 있잖아. 그래서 내가 귀찮아서 그냥 시청으로 저장했는데 아까 시청을 시장으로 잘못 보고 전화를 했었나봐… (시청 : Mairie, 시장 : Maire) 나의 긴 음성을 다 들었는데… 작금의 버스카드 사태가 본인도 매우 안타까운데... 자기가 시장이 아니라서 그 도장은 없고 안경 보험 신청용 도장만 있어 미안하대…”
환장한다…
그는 다시 잘 검색하여 드디어 진짜 시장에게 전화를 함. 다행히 시장이 한방에 받았고 당연하게 자기는 지금 구슬치기(뼤땅이라고 프랑스 할배들이 우리나라 할배들 장기만큼이나 환장하는 지루하고 한심한 놀이)중이라 오늘은 도장을 못 찍어주며 내일 아침에 귀찮지만 찍어주겠다 함.
그리고…
당연히 시장놈이, 직원이 아파서 시청을 안 열고, 월급은 따박따박 받으면서, 일하는 날 구슬치기 하는 주제에, 미안하다고 안함!!!
오히려 친구들만 아는 핸드폰 번호를 어떻게 안 거냐고 개인 정보 보호법을 어긴게 아니냐고 고서방을 윽박 질러댐.
“니가 동네 수퍼마켓에 싹어빠진 니 개목줄 30유로에 판다고 올렸었잖아. 전화번호랑… 그거 아마존에서 새거가 20유로인데… 니 개가 명견 래쉬야 뭐야… 그래서 안다 왜!”
속은 좀 시원했었음. 대체 어떻게 시장 전화번호를 안걸까 늘 궁금했었기에… 시장은 치부를 들켰으나 구슬치기는 빠질 수 없다고 똥베짱력을 드러냈고 다음날 아침 우리는 도장을 받았음.
3센티 인조손톱 얼음여왕은 휴가를 떠났고 우리는 도장 받은 서류를 급행으로 본사로 보냄. 아마 까먹을 때 쯤 되면 카드가 올지도… 이 허무한 영화의 결말은… 우리는 너무도 억울하고 속터지는데 아무도 우리에게 미안한 사람이 없음.
아,참. 고서방이 제출한 벌금거부 항의서의 결과는 제출하고 5일이나 지나서 '니 벌금쪽지 번호 존재 하지 않는데?' 라고 답변이 날아옴...
우리는 프랑스에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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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번에도 또 이야기 부탁한다 - 좋아요와 댓글 부탁 ㅋㅋ
앗… 아니네… 그런데 아쉽네…
이 이야기는 내가 아껴둔 나만의 비밀스러운 초콜렛임. 살면서 이런 매직 같은 일이 나한테 일어났었나… 가끔 혼자 꺼내보고 정신 나간 여자같이 한번씩 웃어보기 딱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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