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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방 스토리 2025 - 의외로 용의주도한...

최종 수정일: 7월 29일

인간은 비슷한 인간끼리 짝을 지어야 행복할까,

아니면 반대끼리 만나야 보완이 될까

이 논제는 아마 여자와 남자가 존재하는 한 영원할걸.

그리고 나는 비스무리한 인간 끼리 살아야 좋다고 생각하는 편임.

왜냐,

너무 안 맞는 인간이랑 살고 있는데

심히 피곤하니까.

그런데 또,

가끔 비슷한 인간끼리 살아도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음.

하나라도 길눈이 밝으면 편할텐데

희한하게 그 장애는 둘 다 갖고 있는 바람에

둘이 새로운 장소만 가게 되면

이 좋은 세상에 구글이 끼고 네비 한 두개 더 틀어도 헤매고 있음.

나 예전에 삼성 다닐때

잘하면 사내커플 될 뻔한 적이 있음.

나보다 세 살 위였던 그 오빠는 여러모로 준수하고 훤칠하고

심각하게 잘생겨서는 유머감각도 있는 것이 아주 내 타입이었으나

결정적으로 나는 그가 나만큼이나 길봉사인 것에 놀래서 사전 차단한 적 있음.

같이 일년짜리 은행 프로젝트 했는데

끝날 때 까지 엘레베이터에서 내리면 둘이서 다정하게 오른쪽으로 틀어 가다가

뒤에서 다른 인간들이

"야이 길치들아! 언제 기억할래!

왼쪽이라고!!"

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음.

그런데 그렇게나 피하고 싶었던 길치랑 살고 있고

어디 갈 때 마다 길바닥 헤맬때면 한숨 남.

어쨌거나,

대부분은 또 나랑 너무 달라서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인간의 의외의 용의주도성과

유비무환적인 어울리지 않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함.

차 타고 십 분 정도 나가서 만나는 옆동네에 대형 수퍼마켓이 있음.

그곳에 가면 알림판 같은 자유 게시판이 하나 있고

주로 사람들이 중고 물품이나 가구등을 직거래로 판다고 올려두곤 함.

하나 쓸만한 것 없고

대부분 쓰레기이며

이걸 판다고 올린거 자체가 얼마나 이 나라 인간들이 뻔뻔한지 또 한 번 증명하는 행태라고

매일 욕하면서 지나갔는데

하루는 고서방이 가던 발걸음을 절도 있게 돌려 황급히 게시판으로 달려가는 거임.

이 쓰레기 마그넷이 또 뭘 사려고 이러나 싶어 나도 다급하게 동행함.

얼른 말려야 함.

남자는 잽싸게 핸드폰을 꺼내더니 중고물품 거래자중 한명의 번호를 저장하는 중이었음.

보니까 개목걸이인데 팔겠다 내놓은 인간의 목에 채워 주고 싶을 만큼 쓰레기임.

그걸 무려 15유로에 내놓았고

궁금해서 아마존 검색하니 새것이 12유로임.하하하...

절대 이걸 살 생각은 아니렸다!

진짜 이걸 사면 이혼한다 소리까지 해야지 맘먹고 음산한 목소리로 물었는데 다행히도 남자는

"미쳤어? 내가 이걸 왜 사"

굿!

그런데...대체 그 번호는 왜?

궁금했지만 물을만큼 정성스럽게 궁금하지는 않았고 반응을 보니 다행히 절대 살 것 같지는 않아 그냥 지나쳤음.

그 일이 있고 나서 몇 달 후...

사설을 먼저 풀어야 함.

우리는 프랑스 시골에 살고 있음.

시골이라는 기준이 어디서부터인가 라고 따지면 잘 모르겠는데

내 기준엔 동네 구역 안에 수퍼 없으면 시골이고

그러므로 우리동네는 시골임.

프랑스는 동네마다 시청이 있고

말이 시청이지 대략 우리나라로 치면 동사무소 정도거나 그 보다 더 영세하다고 봐야 함.

코딱지만한 우리동네에도 시청이 있음.

시골 시청은 정말 게릴라 스타일로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데

예를 들면 월요일은 아침 8시부터 10시까지 깜짝 열고 내내 닫는다던가

화요일 수요일은 완전 대문 걸어잠그고

목요일 오후 세시부터 네시까지 한 시간만 자비를 베풀듯 여는데

그것도 분기마다 혹은 계절마다 여는 시간이 달라짐.

내 웹 브라우저에 가장 윗쪽에 우리동네 시청 홈페이지가 북마크 되어 있다면 믿겠는가.

그나마도 업데이트 안해서 엉터리 정보 그대로 올려져 있을 때도 많음.

프랑스 살면서 이런 개꿀인 직업이 있나 싶은게 한 두개가 아니었지만서도

그중 최고봉은 이런 시골 시장임.

일 하는 꼬라지를 본 적이 없는데

각종 증명서나 여권 갱신 등등의 중요한 업무를 위한 서류에는 이 인간의 도장이 들어가야 함.

님도 아닌 배불뚝이 동네 시장을 오매불망 만나기만을 기다리는 적이 한 두번이 아니고

그때마다 너무 짜증남.

작년에도 이 꼴보기 싫지만 너무 보고 싶은 시장님을 만나야 할 일이 생겼음.

바로 고딩 버스카드 신청에 이 인간의 직인이 들어가야 하는 것.

그 인간의 직인이 들어가야 무려 130유로를 면제 받을 수 있다고 함.

없는 살림에 애 셋이나 버스비 내야 하는데 감면 받을 수 있다면 무조건 해야함.

시청을 화장실 가듯 자주 감.

시장은 당연히 그때마다 꼭 씨씨티브이로 우리 오나 보고 있다가 도망간 것 처럼 없음.

"대체 이 이상한 풍선배는 언제 어떻게 만날 수 있는거야!"

결국 도장을 받아야 하는 기한이 임박하고 진짜 급박해졌을 때는 분노가 활화산처럼 터져나옴.

인신공겨? 인간 외모비하? 이딴거 내 머릿속엔 떠오를 자리 없음.

그런데 고서방이 자랑스럽게 핸드폰을 꺼내들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하기 시작함.

참고로 우리 동네에서 시장 전화번호 아는 사람 거의 없음.

절대 사적인 번호 안 가르쳐줌.

시장은 가르쳐준 적도 없는 전화번호가 누출된 것,

그것도 본인이 꽤나 밉상스럽게 생각하는 고서방이 전화를 해 온 것에 정말 화들짝 놀랬음.

그리고 그는 궁금한 건 꼭 물어야 하는 프렌치임.

그가 대체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안 것이냐 했을때

고서방은 매우 자랑스럽게 대답함.

"니가 앙떼르마르쉐 게시판에 니 썩은 개목줄 판다고 사진이랑 전번이랑 붙였더만.

내가 하루에 두 번 네 개를 마주치는데 그 썩은 개목줄 못 알아볼리가...

높은 시장님 개가 차던거라 그런지 썩은걸 새것보다 비싸게 올렸더만.

역시 베포가 큰 분이라 생각했다우."

솔직히...

그의 철두철미한 용의주도함, 꼼꼼한 미래에 대한 대처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목도한 사건이며

의외로 감동받아 은근 자존심 상했던 기억이 있음...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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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ra2378
10월 12일

전 나와는 다른 사람과 살아야 한다 주의예요 ㅋㅋ 성격이 너무 비슷하면 싸우게 되더라구요😂 가치관은 같지만 성격은 좀 달라야 오래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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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상대:

그것도 맞는 거 같아요 ㅋㅋㅋ 그런데 또 달라서 싸우고 있는 나를 고찰해 보면... 인간은 혼자 살아야 하나?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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